주간시흥신문 기사입력  2007/12/02 [00:00]
[독자기고]효봉 스님과 과거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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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흥시 총무국장 김정규


스님(속가명:이찬형)은 1888년 평남 양덕군 쌍용면에서 수안이씨 부잣집의 5남매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릴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스님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한국인으론 최초로 판사가 됐다. 법관생활 10년 되던 해 한국인 민족투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날 집에 돌아와 똑같은 사람이면서 몇 줄의 법조문으로 감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가를 두고 며칠 밤을 뜬눈으로 고민하다가 허망한 삶에 회의를 느껴 고이 잠든 처자식을 두고 야심한 시각에 담을 넘어 무작정 집을 나와 엿장수를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3년여 방랑하다가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스님이 됐다.
지난 1월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1970년대 긴급조치위반 사건을 재판한 판사 492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현직 대법관 4명과 헌법재판관 3명, 고법원장, 법원행정처 고위직 5명 등이 포함됐다.
당사자를 포함한 다수의 판사들은 당시의 실정법에 따라 판결한 것을 잘못한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발끈했다.
반면 과거사위는 “공개법정에서 이뤄진 판결내용은 비밀이 아니다”라며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라고 맞받았다. 양측 모두 자신들이 옳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한 가지 공정하지 않은 점은 그런 판결을 하게끔 기소를 한 검사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효봉 스님이 잔혹한 일제하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동포를 실정법에 의거 사형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판사직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속세를 떠나 일생을 회계하면서 보낸 스님이지만 실정법에 의거 같은 동포를 사형토록 판결한 것 자체를 잘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악법도 법인 이상 그 직에 있었던 판사가 판결한 것을 잘못된 것 같이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원과 법관들도 명단공개에 대하여 대죄를 지은 죄인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당당하게 임하는 법관이야말로 지금의 시대정신에도 판사의 독립성을 지키고 국민을 섬기는 법관으로 비춰질 것이다. 진정으로 되새겨야할 일은 ‘유신판사’가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판결을 하는 판사가 많지 않다고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아직도 실감 있게 나돌고 있으며 판결에 불만을 품고 현직판사에게 석궁을 쏜 대학교수에게 힘을 주는 글을 올린 네티즌이 많다는 것을 법원에서는 고뇌해야 한다.
현행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양심의 자유를 명분으로 병역의무를 거부한 자에게 운 좋은 자는 무죄, 운 나쁜 자는 유죄를 받아야하고, 단 돈 일만 원을 받은 경찰관은 엄벌에 처하고, 검찰에서 수십만~수백만 원씩 받은 협의를 잡아 통보한 제 식구는 징계시효가 지나 처벌하기가 어렵다는 법원에 대해 국민들은 예쁘게 보고 있지 않다.
오죽하면 양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사법부는 스스로의 권위와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기위해서는 과거든 현재든 부끄럼 없는 판결로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

 

<본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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